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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현대미술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책 '그림의 맛'

그림의 맛

셰프가 편애한 현대미술 크리에이티브



책소개

셰프가 편애한 현대미술 크리에이티브


“갤러리와 주방이 이토록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미처 몰랐을까?” 


크리에이티브하고 난해한 현대미술이 ‘좀 먹어본’ 사람들을 위해 접시 위에 놓였다. 메뉴판에서 음식을 골라 먹듯이 현대미술의 이해라는 난관을 간단히 뛰어넘어 보자. 그림에도 맛이 있다. 먹어본 만큼 보이는 현대미술 이야기. 현대미술은 음식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많은 작가들이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어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이 책은 둘 간의 관계성을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서 헤쳐 본다.


요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맑고 투명한 콘소메를 만드는 방법이나 규격에 따른 채소 썰기의 이름들, 또는 파인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구성하는 방식처럼 고어메이에 관한 팁을 재미나게 읽을 것이다. 프랑스 와인에 관심이 있다면 5대 샤토 중 ‘샤토 무통 로칠드’를 다룬 꼭지가 흥미롭게 읽힐 테다. 로칠드 가문은 지금은 보편화되어 있는 아티스트 라벨을 가장 먼저 시도한 곳이다.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저 유명한 라벨들에 얽힌 얘기들도 들을 수 있다. 치즈의 세계가 궁금하지만 그 강렬한 향과 맛 때문에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치즈 입문자들이라면 숙성기간을 기준으로 맞춤한 추천을 받을 수도 있겠다. 대다수의 사람은 먹을 줄 안다. 요리는 기술을 요할지언정, 먹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입에 맞는 것을 먹으면 즐겁다. 


현대미술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책이다. 



상세이미지



저자 소개

저 : 최지영 

로레알, 필립모리스 등 다수의 외국계 대기업에서 일하다 훌쩍 요리 유학을 떠났다.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뉴욕 CIA에서 공부하고 현지 식당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한국에 돌아와 오너 셰프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건강한 식재료로 정성껏 요리한 컨템포러리 퀴진(Contemporary cuisine)을 선보였다. 푸드 스타일링을 병행하고 여러 매체에 요리와 미술을 주제로 칼럼을 쓰다 보니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갈수록 열렬해졌다. 미술서를 탐독하고 갤러리를 제 집 드나들 듯 오가며 그 애정을 더욱 키워나갔다. 레스토랑을 정리한 후로는 그런 경험들을 모아 이 책을 썼고, 지금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아트다이너(ARTDINER) 대표로 일하고 있다. 



목차

책을 내며


1부

마블링에서 잇 아트로―레이디 가가와 다니엘 스포에리가 선보인 고기들

셰프의 오마주―잭슨 폴록의 해물 요리와 하루키의 샐러드

헬스키친의 질서―프랜시스 베이컨의 카오스를 닮은 공간

도마 위의 극사실주의―론 뮤엑의 하이퍼리얼리즘과 요리사의 마세도인

집밥이 예술이야―수보드 굽타의 커리와 유튜브로 배운 커리

주방의 부케들―빅토리안 시대의 낭만

길바닥이 어때서―뱅크시의 낙서 예술과 푸드 트럭

읽어야 아는 맛―리처드 프린스의 텍스트 아트와 메뉴판

쌓아 올려야 제맛―아르망의 아상블라주와 카렘의 피에스몽테, 집적에 대한 유별난 기호와 재능

쇼핑 다녀오십니까?―뒤샹의 레디메이드와 레토르트 식품


2부

탈구축의 레시피―어리둥절한 컴바인 페인팅과 분자요리

생각하는 미식가―예술적인 돼지들과 구르망의 욕망

날로 먹는 즐거움―아르 브뤼와 로푸드

가난해서 아름다운―아르테 포베라 그리고 프리건

실존을 위한 커피―이방인을 위로해줘 

와인을 좋아하는 예술적 이유―샤토 무통 로칠드와 아티스트 라벨

그림은 그림이고 치즈는 치즈다―백색화와 라브리크

탐식과 미식 사이―마그리트와 피터르 브뤼헐의 식도락론



책 속으로

추측컨대 그 과자는 콘소메가 진정 맑은 스프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저 길고 까다로운 조리 과정이 ‘함축’ 아닌 ‘생략’의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자에서 콘소메 맛이 극사실적으로 구현됐다면 그건 틀림없이 마법의 가루로 불리는 인공 시즈닝(artificial seasoning) 덕분일 테다. (중략) 

하지만 요리가 진정 하이퍼리얼리즘 미술과 닮아 있는 구석이 있다면 그건 인공 시즈닝의 힘을 빌려 극적으로 재현한 신묘한 맛이 아닌, 원본의 우위를 압도할 만큼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창조해내는 힘, 그러니까 끊임없는 스킬 연마와 지난한 자기 훈련이 아닐까 싶다. (67-72쪽)


뒤샹은 ‘작품의 아이디어가 완성작보다 중요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전통을 고수하는 예술이 지나치게 심각하고 진지해 유머 감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제는 지극히 가벼운 예술들이 박수 받는 때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날 수많은 미술 작가들이 레디메이드 예술에 상당히 매혹돼 있는 반면 관람객들의 반응은 사뭇 시큰둥하다는 데 있다. 일단 (예술 작품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압도하는 비주얼’의 부재 탓에 관람자들이 작품에서 즉각적인 호소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이 왜 예술인지’ 장황한 설명이 곁들여져야만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상황이다. (173쪽)


라우센버그의 작품들을 일컬어 컴바인 페인팅이라 명명한 건 작가 자신이다. 작품 속 오브제들 간에 상징적 연관성이 없거나 형식적 중심이 부재해 그저 복잡한 혼합물처럼 보이므로 이를 회화라 부르기도 조각이라 부르기도 애매했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하면 아드리아 셰프의 분자 미식이 요리도 되고 예술도 되는 것처럼, 라우센버그의 컴바인 페인팅 또한 회화도 되고 조각도 되는 것이다. (196쪽)


그러나 클래식한 미식가들에게 욕망의 불, 쾌락의 희열, 지복(至福)의 완전한 휴식을 떠올리게 할 만큼 특별한 고어메이로 칭송받아온 푸아그라는 오늘날 미국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유럽 여러 국가들이 제조와 유통을 법으로 금하고 있는 식재료다. 이유는? 바로 강제 위관(胃管)영양법인 ‘가바지(Gavage)’ 때문이다. (중략)

이쯤 되니 진정으로 궁금하다. 돼지들에게 묻고 싶다. 좁고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병들어 죽거나(정신병을 포함해) 살아남는다 해도 식용으로 도살되는 운명과 비록 문신 시술의 고통을 겪어야 하지만 쾌적한 환경에서 맘껏 뛰놀다 불멸의 예술 작품으로 남는 운명, 둘 중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삶을 고를 건지 말이다. (205-212쪽)



출판사 리뷰

셰프가 편애한 현대미술 크리에이티브


“갤러리와 주방이 이토록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미처 몰랐을까?”


크리에이티브하고 난해한 현대미술이

‘좀 먹어본’ 사람들을 위해 접시 위에 놓였다.

메뉴판에서 음식을 골라 먹듯이

현대미술의 이해라는 난관을 간단히 뛰어넘어 보자.

그림에도 맛이 있다.

먹어본 만큼 보이는 현대미술 이야기


현대미술은 음식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많은 작가들이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어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이 책은 둘 간의 관계성을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서 헤쳐 본다.


식탁을 아예 캔버스 위로 옮겨온 아티스트가 있다. 다니엘 스포에리다. 그는 먹고 배설하는 과정을 영상물로 제작하거나 음식물 쓰레기통을 거꾸로 뒤집어 엎어놓는 등의 ‘잇아트’를 선보였다. 한 끼의 식사에 수반되는 일련의 행동들을 그대로 예술로 만든 것이다. 설치미술가 수보드 굽타는 관람객들에게 인도 가정식을 손수 만들어주는 라이브 퍼포밍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가 하면 국내 작가인 최선은 구제역 파동으로 살처분된 돼지들에게 순번을 매겨 기나긴 족자로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미술은 식문화의 일상성을 얘기하기도, 그 이면의 잔혹한 진실을 얘기하기도 한다.


반대로 식문화가 미술을 가져오거나 미술의 영역에 들기도 한다. 괄티에로 마르케시 셰프가 잭슨 폴록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드리핑 디 뻬쉐’를 보면 이것을 음식이라 불러야 할지, 미술작품이라 불러야 할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음식이 미술로써 인정받은 예도 있다. 세계 최고의 미술행사인 카셀 도큐멘타에 아티스트로서 초청된 페란 아드리아 셰프다. 당시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아드리아 셰프의 혁신적인 분자요리는 “예술의 이름을 달고 행해지는 활동의 궤적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더 이상 음식에 대해 ‘맛있다’, ‘맛없다’로만 판가름하는 시대가 아니다. 예술의 맥락에서 거론되는 요리가 있으며, 무언가를 만들어 먹는 일 자체가 문화 활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먹는 것만큼 쉬운 현대미술,

“누워서 그림 먹기!”


책에 등장하는 아티스트들을 나열하면 이렇다. 다니엘 스포에리, 잭슨 폴록, 프랜시스 베이컨, 론 뮤엑, 수보드 굽타, 뱅크시, 뒤샹, 장 뒤뷔페, 페란 아드리아, 르네 마그리트……. 현대미술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거론되는 음식들은 그 스펙트럼이 더욱 넓다. 평소에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물론이고 세계 3대진미를 모아 만든 ‘럭셔리 다이닝’부터 쓰레기통을 뒤져서 식재료를 확보하는 프리건들의 삶까지 넓게 아우른다. 이런 얘기들이 저자의 경험에 녹아 쉽게 풀렸다.


저자 최지영은 요리전문학교에서 수학한 셰프 출신이다. 미술에 빠져 독학했다. 그림의 맛은 그가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쌓아온 음식 얘기와, 오랜 시간 관심을 갖고 공부해온 현대미술을 엮어 쓴 책이다. 그 방법은 의도적인 접합보다는 자연스러운 연상에 가깝다. 저자는 미술과 음식 모두 문화라는 같은 뿌리에서 뻗어나온 가지라고 본다. 뿌리가 같기 때문에 진화하거나 세분화되는 양상에서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 속 여덟 꼭지에서 음식과 미술은 그렇게 엮인다. 분자요리와 아방가르드 미술이, 길거리 음식과 길거리 낙서가, 식재료의 생명윤리와 동물 오브제의 생명윤리가, 날것의 음식 ‘로푸드’와 아카데미 미술의 관습에서 벗어난 날것의 예술 ‘아르 브뤼’가 각각의 방식들로 연결된다. 미술계와 요리계, 두 분야 사이의 팽팽하거나 느슨한 연결고리는 독자들 또한 얼마든 추측해나갈 수 있다. 그 과정이 의외로 따분하거나 학술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이 책이 알려줄 것이다.


맛있게 감상하고, 곰곰이 먹어보자


요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맑고 투명한 콘소메를 만드는 방법이나 규격에 따른 채소 썰기의 이름들, 또는 파인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구성하는 방식처럼 고어메이에 관한 팁을 재미나게 읽을 것이다. 프랑스 와인에 관심이 있다면 5대 샤토 중 ‘샤토 무통 로칠드’를 다룬 꼭지가 흥미롭게 읽힐 테다. 로칠드 가문은 지금은 보편화되어 있는 아티스트 라벨을 가장 먼저 시도한 곳이다.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저 유명한 라벨들에 얽힌 얘기들도 들을 수 있다. 치즈의 세계가 궁금하지만 그 강렬한 향과 맛 때문에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치즈 입문자들이라면 숙성기간을 기준으로 맞춤한 추천을 받을 수도 있겠다.


대다수의 사람은 먹을 줄 안다. 요리는 기술을 요할지언정, 먹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입에 맞는 것을 먹으면 즐겁다. 현대미술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책이다.